양주대학살 13부-함락5일차(2) 집단 강간당하는 부녀자들

 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부-도르곤<사가법 선생! 같이 갑시다!>

2부-도도<반항하는 양주성을 도륙 냈나이다!>

3부-함락 하루 전...잔치를 벌이다

4부-함락1일차(1) 낙성임박! 이중인격자 사가법!

5부-함락1일차(2) 아내에게 자살을 권유하다!

6부-함락1일차(3) 살육의 밤 공포에 떨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9부-함락2일차(3) 구사일생 처자와 상봉하다!

10부-함락3일차 학살에 울부짖는 아이들과 울지 않는 젖먹이

11부-함락4일차 청 한족 장군이 한족들을 살리다!

12부-함락5일차(1) 흉폭한 한족 팔기군 병사!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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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 中

置兒於宅,同婦急出省兄,前後項皆砍傷,深入寸許,胸前更烈,啟之洞內府;

予二人扶至洪宅,問之,亦不知痛楚,神魂忽瞶忽甦。

安置畢,予夫婦復至故處躲避,鄰人俱臥亂屍眾中,忽從亂屍中作人語曰:

「明日洗城,必殺一盡,當棄汝婦與吾同走。」

婦亦固勸余行,余念伯兄垂危,豈忍捨去?

又前所恃者猶有餘金,今金已盡,料不能生,一痛氣絕,良久而甦。

火亦漸滅,遙聞炮聲三,往來兵丁漸少,予婦彭兒坐糞窖中,洪嫗亦來相依。

有數卒擄四五個婦人,內二老者悲泣,兩少者嘻笑自若;

後有二卒追上奪婦,自相奮擊,內一卒勸解作滿語,忽一卒將少婦負至樹下野合,餘二婦亦就被污,

老婦哭泣求免,兩少婦恬不為恥,數十人互為姦淫,仍交與追來二卒,而其中一少婦已不能起走矣。

予認知為焦氏之媳,其家平日所為,應至於此,驚駭之下,不勝嘆息。

忽見一人紅衣佩劍,滿帽皂靴,年不及三十,姿容俊爽,隨從一人,衣黃背甲,貌亦魁梧,後有數南人負重追隨。

紅衣者熟視予,指而問曰:

「視予,爾非若儔輩,實言何等人?」

予念時有以措大而獲全者,亦有以措大而立斃者,不敢不以實告,紅衣者遂大笑謂黃衣者曰:

「汝服否?

  吾固知此蠻子非常等人也。」

復指洪嫗及予問為誰?

具告之,紅衣者曰:

「明日王爺下令封刀,汝等得生矣!幸勿自斃。」

命隨人付衣幾件,金一錠,問:

「汝等幾日不食?」

予答以五日,則曰:

「隨我來。」

予與婦且行且疑,又不敢不行,行至一宅,室雖小而貲畜甚富,魚米充軔,

中一老嫗,一子方十二三歲,見眾至,駭甚,哀號觸地。

紅衣者曰:

「予貸汝命,汝為我待此四人者,否則殺汝,汝此子當付我去。」

遂挈其子與予作別而去。

老嫗者鄭姓也,疑予與紅衣者為親,因謬慰之,謂子必返。

天已暮,予內弟復為一卒劫去,不知存亡?

婦傷之甚。

少頃,老嫗搬出魚飯食予;

宅去洪居不遠,予取魚飯食吾兄,兄喉不能咽,數箸而止,予為兄拭髮洗血,心如萬磔矣!

是日,以紅衣告予語遍告諸未出城者,眾心始稍定。

아(兒)를 댁(宅)에 치(置)하였는데, 부(婦)와 함께 급출(急出)하여 형(兄)을 성(省)하였는데,

전후(前後)의 항(項/목덜미)이 모두 감상(砍傷/베인 상처)하였으며, 촌허(寸許/손가락 한마디 가량)를 심입(深入)하였고,

흉전(胸前)은 경렬(更烈/더욱 사나움)하여, 동(洞/깊숙함)한 내부(內府)를 계지(啟之)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부(扶/부축함)하여 홍댁(洪宅)에 지(至)하여 문지(問之)하였는데,

역시(亦) 통초(痛楚/심히 아프고 괴로움)를 부지(不知)하였고, 

신혼(神魂/정신과 혼백)이 홀(忽)연히 귀(瞶/의식이 없음)하였다가 홀(忽)연히 소생(甦)하였다.

안치(安置)를 필(畢)하자, 우리 부부(夫婦)는 다시 고처(故處)에 지(至)하여 타피(躲避/피하여 숨음)하였고,

린인(鄰人)이 모두 시중(屍眾) 중(中)에 와란(臥亂/어지럽게 누워있음)하였는데,

홀연히(忽) 난시(亂屍) 중(中)을 종(從)하여 작(作)한 사람이 말하길

「명일(明日)은 세성(洗城)하여 일진(一盡)을 필살(必殺)할 것이니, 마땅히 너의 부(婦)를 기(棄)하고 

  나와 함께 동주(同走)하자!」

부(婦) 역시(亦) 여행(余行)을 고권(固勸)하였는데, 내가 염(念)하기로

<백형(伯兄)이 수위(垂危/사경에 이름)한데, 어찌 차마 사거(捨去)하리오?

 또 전(前)에 소지(所恃)한 것들은 오히려 여금(餘金)이 있었는데, 지금(今)은 금(金)이 이진(已盡)하였으니,

 요(料)하건대 생(生)을 불능(不能)하리라.>

일통(一痛)으로 기절(氣絕)하였는데, 양구(良久/한참 지남)한 뒤에야 소(甦/깨어남)하였다.

화(火) 역시(亦) 점멸(漸滅)하였는데, 포성(炮聲) 3을 요문(遙聞)하였고, 왕래(往來)의 병정(兵丁)이 점소(漸少)하자,

나, 부인, 팽아(彭兒)는 분교(糞窖/화장실) 중(中)에 좌(坐)하였고, 홍구(洪嫗) 역시(亦) 내(來)하여 상의(相依)하였는데,

수졸(數卒)이 있어 4, 5 개(個/명) 부인(婦人)을 노(擄)하였는데, 내(內)의 2노자(老者)는 비읍(悲泣/소리 없이 슬피 움)하였고,

양(兩) 소자(少者)는 희소(嘻笑/즐겁게 웃음)하고 자약(自若/태연함)하였다.

후(後) 졸(卒)이 있어 추상(追上/따라잡음)하고 탈부(奪婦)하였는데, 자상(自相)으로 분격(奮擊)하였고,

내(內)의 1 졸(卒)이 만어(滿語)를 작(作)하여 권해(勸解/타일러서 화해시킴)하니,

홀연히(忽) 1 졸(卒)이 장차(將) 소부(少婦)를 부(負/업음)하여 수하(樹下/나무 밑)에 지(至)하여

야합(野合/남녀가 사통함)하였고, 남은 2부(婦) 역시(亦) 취(就/나아감)하여 피오(被污/욕을 당함)하였는데, 

노부(老婦)가 곡읍(哭泣/소리 내어 슬피 욺)하고 구면(求免)하였고, 양(兩) 소부(少婦)는 염(恬/담담함)하였는데 

치(恥)로 삼지 않았고, 수십인(數十人)이 호(互/번갈아 듦)하여 간음(姦淫)하였는데, 이어 추래(追來)한 2졸(卒)과 더불어 

교(交)하였고, 그 중(中) 1 소부(少婦)는 이미(已) 기주(起走/일어나 걸음)를 불능(不能)하였다.

나는 초씨(焦氏)의 식(媳/며느리)임을 인지(認知)하였는데, 그 가(家)가 평일(平日)에 소위(所為/소행)하여, 

응당(應) 이에 지(至)하였고, 경해(驚駭/놀라고 두려워함)의 하(下)에도 탄식(嘆息)을 불승(不勝)하였다.

홀연히(忽) 홍의(紅衣)와 패검(佩劍/긴 칼을 참)한 1인(人)을 견(見)하였는데,

만모(滿帽/만주 모자)와 조화(皂靴/검은 비단 신발)하였고, 연령(年)은 30을 불급(不及)하였는데,

자용(姿容/용모)이 준상(俊爽/준수함)하였고, 수종(隨從)은 1인(人)이었고, 의황(衣黃)하고 배갑(背甲)하였고, 

모(貌) 역시(亦) 괴오(魁梧/장대함)하였는데, 후(後)에는 수(數) 남인(南人)이 있어 부중(負重/무거운 짐을 짊어짐)하고 

추수(追隨/뒤쫓아 따름)하였다.

홍의자(紅衣者)가 나를 숙시(熟視/눈여겨 자세히 봄)하더니, 지(指)하고는 문(問)하여 말하길

「너를 시(視)하니, 너는 이 주배(儔輩/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 진언(言)하면 어떤 사람인가?

내가 염(念)하기로 이때 조대(措大/청빈한 선비)로써 획전(獲全)하는 자(者)가 있었으나

역시(亦) 조대(措大)로써 입폐(立斃/죽음이 정해짐)한 자(者)도 있으니,

감히(敢) 실고(實告)로서 못함이 없었고, 홍의자(紅衣者)가 마침내 대소(大笑)하여 황의자(黃衣者)를 위(謂)하여 말하길

「너는 복부(服否/승복하지 않음)하는가?

  나는 이 만자(蠻子)가 비상(非常)한 사람이라 고지(固知)한다.

다시 홍구(洪嫗)를 지(指)하며 나에 이르러 누구냐고 문(問)하니, 구고(具告)하였다.

홍의자(紅衣者)가 말하길

「명일(明日) 왕야(王爺)가 봉도(封刀)를 하령(下令)할 것이니, 여등(汝等)은 득생(得生)하였도다!

  아무쪼록 자폐(自斃)하지 말라!

명(命)하여 수인(隨人)은 의(衣) 기건(幾件)과 금(金) 일정(一錠)을 부(付)하게 하였고, 문(問)하길

「여등(汝等)은 불식(不食)한지 기일(幾日)인가?」

나는 5일(日)로써 답(答)하니, 즉(則) 말하길

「아래(我來)를 수(隨)하라!」

나는 부인(婦)과 함께 또한 행(行)하고 또한 의(疑)하였으나, 또한 감히(敢) 불행(不行)하지도 않았고,

행(行)하여 일댁(一宅)에 지(至)하였는데, 실(室)은 비록 소(小)하였으나 자축(貲畜/쌓아 놓은 재물)은 심부(甚富)하였고,

어미(魚米/물고기와 쌀)가 충인(充軔/쇄기를 채움)하였고, 

중(中)에 1노구(老嫗)와 바야흐로 12, 3세(歲)인 1 자(子)가 중지(眾至)를 견(見)하니, 해심(駭甚/놀람이 심함)하였고,

애호(哀號/슬프게 부르짖음)하며 촉지(觸地)하였다.

홍의자(紅衣者)가 말하길

「내가 너의 명(命)을 대(貸/용서함)하겠노라.

  너는 나를 위(為)해 이 4인들을 대(待/모심)하라.

  아니면 즉(則) 너를 살(殺)할 것이니, 너의 이 자(子)는 마땅히 부아(付我)하여 거(去)하겠노라!」

마침내 그 자(子)를 계(挈/거느림)하고 나와 더불어 작별(作別)하고는 거(去)하였다.

노구자(老嫗者)는 정씨(鄭姓)였는데, 내가 홍의자(紅衣者)와 더불어 친(親)한지를 의(疑)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유위(謬慰/거짓으로 위로함)하며, 위(謂)하기를 자(子)가 필반(必返)하리라 하였다.

천(天)이 이미(已) 모(暮)하였는데, 내 내제(內弟/손아래 처남)이 다시 1 졸(卒)이 겁거(劫去)하였는데,

존망(存亡)을 부지(不知)하니, 부(婦)의 상(傷)이 심(甚)하였다.

소경(少頃/잠깐 동안)에, 노구(老嫗)가 나에게 어(魚)와 반식(飯食/밥)을 반출(搬出/꺼내어 옮김)하였다.

댁(宅)의 거(去)는 홍거(洪居)와 불원(不遠)하였는데, 나는 어(魚)와 반식(飯食)을 내 형(兄)에게 취(取)하였는데,

형(兄)이 후(喉/목구멍)이 연(咽/삼킴)함이 불능(不能)하니, 수저(數箸/몇 젓가락)하고는 지(止)하였는데,

내가 형(兄)을 위해 식발(拭髮/머리털을 닦음)하고 세혈(洗血/피를 씻어냄)하였는데,

심(心)이 만책(萬磔/만 갈래로 찢어짐)과 같았다!

이날에, 홍의(紅衣)가 나에게 고(告)한 말로써 여러 미출성자(未出城者)에게 편고(遍告/두루 고함)하니,

중심(眾心)이 비로소 초정(稍定)하였다.


아이를 집에 두고 부인과 함께 급히 나가 형을 살피었는데 목덜미 전후로 모두 베인 상처가 손가락 한다미 가량 깊이 들어갔고 

앞가슴은 더욱 사납고 깊숙하여 내부가 열려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부축하여 홍씨 집에 이르러 물었는데 또한 통증이 심하여 알아듣지 못하였고 

정신과 혼백이 홀연히 의식이 없다가 홀연히 소생하곤 했다.

안치를 마치자 우리 부부는 다시 이전의 곳에 이르러 피하여 숨었는데 옆 사람들이 모두 시신 가운데 어지럽게 누워 있었는데 

홀연히 어지러운 시체를 따라 누워 있던 사람이 말하길

「내일 성을 도륙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니, 마땅히 너의 부인을 버리고 나와 함께 달아나자!」

부인 또한 내가 가기를 굳게 권하였는데 내가 생각하기로

<큰형이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버리고 가리오?

 또 전에는 오히려 소지한 약간의 금이 있었지만 지금은 금도 이미 떨어졌으니 헤아리건대 살 수 없으리라.>

잠시 통증으로 기절하였는데 한참 지난 뒤에야 깨어났다.

불 또한 점차 꺼졌는데 포성이 세 번 멀리서 들리더니 왕래하던 병졸들이 점차 감소하였고

나와 부인, 팽아는 화장실 가운데 앉아 있었으며, 홍 할머니 또한 와서 같이 의지하였는데

몇몇 병졸이 있어 4~5명의 부인을 사로잡았는데 안의 두 노인은 소리 없이 슬피 울고 있었고

두 어린 부인들은 즐겁게 웃으며 태연하였다.

후에 병졸 2명이 따라잡아 부인을 빼앗았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어 싸웠고 안의 병졸 1명이 만주어를 써서 타일러서 

화해시켰다.

홀연히 병졸 하나가 장차 작은 부인을 짊어지고 나무 밑에 이르러 야합하였고 남은 부인 두 명 또한 나아가 욕을 당하였는데 

노부인이 소리 내어 슬피 울면서 풀어달라 청하였는데도 두 어린 부인들은 담담해하며 수치로 여기지 않았고, 

수십 명이 번갈아가며 간음하였는데 이어 따라온 병졸 2명과도 더불어 교접하였고 

그 중 한 어린 부인은 이미 일어나 걸을 수도 없었다.

나는 초씨의 며느리임을 인지하였는데 그 집안이 평일의 소행으로 응당 이에 이르렀으나

놀라고 두려워하는 아래에서도 탄식을 이기지 못하였다.

홀연히 홍색 옷을 입고 긴 칼을 찬 1명을 보게 되었는데 만주 모자와 검은 비단 신발을 신고 있었고 

나이는 30에 미처 이르지 못하였는데 용모가 준수하였다.

따라오던 1명은 노란 옷을 입고 배에 갑옷을 걸쳤는데 용모가 또한 장대하였고

뒤에는 몇 명의 남인(한족)이 있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뒤쫓아 따르고 있었다.

홍의를 입은 자가 나를 눈여겨 자세히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기를

「너를 보아하니 너는 이 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인지 사실대로 말하라!」

내가 생각하기로 이때 청빈한 선비로 안전을 얻은 자도 있었으나 또한 청빈한 선비로 죽게 된 자도 있었으니

감히 사실대로 고하지 않을 수 없었고 홍의를 입은 자가 마침내 크게 웃으며 노란 옷을 입은 자에게 말하길

「너는 승복하지 않느냐?

  나는 이 오랑캐가 비상한 사람이라 굳게 믿는다.」

다시 홍 할머니를 가리키며 나에게 누구냐고 물으니 모두 고하였다.

홍의를 입은 자가 말하길

「내일 왕야(도도)가 칼을 봉하라는 영을 내릴 것이니 너희들은 삶을 얻게 되었느니라!

  아무쪼록 스스로 죽지 말라!」

명을 내려 따라오는 사람에게 의복 몇 벌과 금 한 덩이를 주게 하였고 묻기를

「너희들이 먹지 않은지 며칠이나 되었느냐?」

나는 5일이라 답하니 즉 말하길

「나를 따라오라!」

나는 부인과 함께 또한 걷고 또한 의심하였으나 또한 감히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고

걸어서 한 집에 이르렀는데 거실은 비록 작았으나 쌓아 놓은 재물이 심히 풍성하였고 어육과 쌀은 쇄기를 채우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노파 한 명과 바야흐로 12~13세인 아들 한 명이 무리가 오는 것을 보더니 심히 놀라서 부르짖으며 땅에 엎드렸다.

홍의를 입은 자가 말하길

「내가 너의 목숨을 용서하겠노라!

  너는 나를 위해 이 4인을 모시도록 하라!

  아니면 즉 너를 죽일 것이니 너의 이 아들은 마땅히 내가 데려가겠노라!」

마침내 그 아들을 거느리고 나와 더불어 작별하고는 가버렸다.

노구는 정씨란 자였는데 내가 홍의를 입은 자와 더불어 친한지를 의심하니 이로 인하여 거짓으로 위로하며 말하길 

아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하였다.

하늘이 이미 저물었는데 내 손아래 처남이 다시 병졸 한 명에게 위협당하여 가버려 존망을 알지 못하니 부인의 상심이 심하였다.

잠시 후에 노구가 나에게 생선과 밥을 꺼내 주었는데 집과 홍씨 거주지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나는 생선과 밥을 내 형에게 가져갔는데 형이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하였고 몇 젓가락에 그치었다.

내가 형을 위해 머리털을 닦고 피를 씻어내니 마음이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날에 홍의를 입은 자가 나에게 고한 말(칼을 봉함)로써 여러 미처 성을 나가지 못한 자들에게 두루 고하니

무리의 마음이 비로소 점차 안정되었다.


요약.

1645년 4월 29일 양주성 함락 5일차.

흉악한 한족 팔기군이 형을 칼로 베고 약탈하고 가버리자 왕수초는 급히 큰형을 집으로 데려왔는데 상처가 매우 심하였다.

형을 집안에 눕혀 놓고 왕수초는 처자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숨는다.

이때 청군 병졸들이 부녀자 2명을 차례로 겁탈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침 귀족으로 보이는 자가 지나가다 왕수초를 발견하고

총사령관 도도가 내일 학살 금지령(봉도령)을 내릴 것이라 말해주고 왕수초를 데리고 정씨 노파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청 귀족이 노략질한 재물과 식량이 가득했는데 귀족은 노파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인질로 데려가 버린다.

왕수초는 음식을 들고 급히 형이 있는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이려 하였으나 형은 목에 상처를 입어 먹질 못하였다.

왕수초는 주변 사람들에게 봉도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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